광주 안씨 족보 경술보(1790) 기록에서 광주 안씨 성씨연원을 본다. 성씨 역사

경술보 기록에서 알아낸 광주 안씨 성씨연원

우리 광주 안씨 역대 족보에 기록한 성씨연원은 漢文표현이 매우 간략하고

애매하여 성씨연원 이 명확치 못함이 한글세대인 우리에게 아쉽게 여긴다.

순암공(휘 안정복)은 조선조 후기에 탁월한 역사학자이며, 우리 최초족보『무오보』(1738) (『기미보』 1739라 하기도 함)를 편찬할 때 그의 부친을 도와 수단 필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학문이 완숙하며 많은 족보를 두루 열람하여 보첩에 능통한 식견으로 생애 말기 1790년에 완성한 『경술보』(庚戌譜(1790)를 직접 편찬하며. 변무(辨誣). 변정(辨正). 변오(辨誤)로 그 주(註)를 달아 이 족보의 신뢰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경술보에서 우리 광주 안씨의 출자(出自)를 어떻게 기록하였는가 살핀다.

경술보에 기록한 관련 한문원문(漢文原文)

0. 순암공이 직접 쓴 경술보발(庚戌譜跋)-卷首五에 기록.

吾安受姓 廣州自麗初己然 而無大譜在 古尙矣無徵

번역(직역):우리 안씨가 성을 받은 것은 광주로부터 고려 초인 것이 맞다. 그러나 상세한 큰 족보가 없어 옛일을 살필 수 없고 밝힐 수가 없다.

0. 순암공이 직접 쓴 廣州安氏世譜卷一의 1면에 기록.

始祖安邦傑 仕高麗太祖 官大將軍 封廣州君

諸譜 麗祖時 廣州人弑主 公倡義討平之 拜大將軍 封廣州君 因爲貫鄕 或云 以州吏出顯.....

번역(직역): 시조는 안방걸이다. 고려 태조를 섬기니 벼슬은 대장군이고 광주군의 봉작을 받았다.

여러 족보는 고려 태조 때에 광주사람이 그지방수령을 죽이니 공이 의병을 일으켜 무력으로 평정하니
대장군의 벼슬을 받고 광주군에 봉작되었다.
이 연유로 관향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고을의 관리(州吏)로 뛰어나 드러났다고 한다.


해설: 1. 보발문=우리 성을 安씨라고 성을 받았다고 하였다. 사성(賜姓:왕조 국가인 고려의 태조에게서 성을 내려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성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순암공은 조선때 사람이나 고려나 조선이 왕조국가임을 잘 아는데 사성이 아닌 "성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또 광주에서 살때는 고려 초이니 고려 태조 때가 맞다 하였다. 즉 광주의 토착인으로 이때부터 성을 安 씨라 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세한 큰 족보가(大譜. 무오보가 있으나 이를 상세한 족보로 여기지 않은듯하다.) 없어 옛일(고려 태조 때의 시조출자에 관한)을 살피고 밝힐 수 없다고 한 다.

그러면서 이어서 사간공 선조의 보첩 3권을 잃어버리고 서문이 남아있어 범례와 규모를 엿볼 수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고려 태조 23년(940) 전 후에 주. 부. 군. 현을 구획하며 지방의 세력자( 토호. 호장. 지방관원  등)에게 성을 갖게 하고
지방에 대한 지배체제를 정비하여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고 보아, 성씨의 연원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이른바 「토성분정」이라는 학술용어로 설명함에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해설: 2. 시조기록=시조는 고려 태조를 섬겼다(仕)라고 전제적(前提的)으로 생존시기를 명백히 한다.
대장군이라는 벼슬을 받게 된 것은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무력으로 평정하였으므로 대장군의 군직을 분명히 하고
광주군이라는 군호로 봉작되 었다고 높여 말한다.
이 연유로 광주를 관향(貫鄕.=本貫)으로 하였다고 본관을 광주로 갖는 내력을 분명히 설명한다.

또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시조는 본래 광주의 주리(州吏=지방관리)로 뛰어난 사람이라 하였다는 것은 광주의 지방관직자이니 일정한 세력으로 의병을 일으키는 역량을 가진 사람임을 말한다.

이 설명은 『대동운부군옥』(1589.편찬.1790년경 간행.)을 순암공은 이 책을 간행할 때 서문을 쓴 丁範祖와 친분이 있어 이 책을 열람하였다고 추정한다.

총체적으로 순암공의 『경술보』기록에서 광주 안씨의 「성씨연원」을 한글로 표현하는 줄기를 다 세울 수 있다고 본다.


덧글

  • kdamyoung 2014/06/25 14:19 # 삭제 답글

    광주안씨 안윤손(1450~1520)이라는분이 제21대조이신 순천김씨 김원석(판사공)의사위로
    기록되어있읍니다
  • 노송인 2016/04/10 15:42 # 답글

    뒤늦게 덧글을 봐서 이제사 답글 올립니다.

    과연, 휘 潤孫공은 傍祖이십니다. 즉,나의 직계 선조이신 휘 湜(15대조)선조와는 四寸 종형제간으로 우리 직계선조가 종형이라서 한성에서 관직에 계실때 왕래가 많았음이 증거됩니다. 이는 성종실록에도 기록이 있지요.
    방조어른의 처가는 관연 순천 金씨(휘 원석공)의 사위가 맞습니다.
    님은 혹시. 순천김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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