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이 게시하다가 삭제한 중요한 [성씨의 역사] 성씨 역사




2014. 12. 13.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핵심인 한국학 분야의 [한국의 인물정보]에서 [5개의 안씨(安씨)를 소개하는 성씨의 역사]는 아래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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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안씨1.(구)의 성씨역사.
[성씨의 역사]

오늘날 죽산안씨의 시조로 알려지는 안방준(安邦俊)은 당나라 종실(宗室) 이국정(李國貞)의 아들인 이원(李瑗)의 장남 이지춘(李枝春)이라고 한다. 그는 864(경문왕 4)에 이엽춘(李葉春), 이화춘(李花春) 형제와 왜구토벌에 큰 공을 세우자, 왕이 안국지신(安國之臣)’이라는 뜻에서 안씨(安氏) 성을 받았으며, 이 때에 안방준으로 개명하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고 1999년에 편찬된 죽산안씨대동보에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신당서 70권의 당나라 종실 세계에는 이국정의 아들 중에 이원이라는 인물이 없다.
따라서 이국정 - 이원 - 이지춘으로 이어지는 세계는 근거있다고 보기기 힘들다.

 

중국에서 온 3형제에서 안씨가 연원했다는 주장이 나오기 이전까지, 씨족원류 등의 문헌에서 죽산안씨의 맨 윗대로 언급되는 사람은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이다. 이 두 사람은 계보가 다른 것으로 나오는데, 이들의 선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참고문헌]
唐書(70上 宗室世系上. 78 열전제3종실. 224上 叛臣上)
資治通鑑(권제237 唐紀 53)
죽산안씨족보(1965년 이전)
죽산안씨대동보(1999)
씨족원류
 
[집필자]
오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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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안씨2(신죽산안씨) 시조

성씨의 역사

시조는 안원형(安元衡)으로 알려진다.
안원형은 고려 후기의 인물로 전해지는데, 관련 기록은 많지 않다.

우선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가 지은 회양부사안후묘갈(淮陽府使安侯墓碣)이 있는데 여기에는

“공의 이름은 안복초(安復初)이며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아버지는 안노생(安魯生), 할아버지는

안면(安勉), 증조는 중대광(大匡輔) 광산군(光山君) 안원형(安元衡)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과거 급제자 기록을 정리한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에는 “죽산안씨

안노생(安魯生)의 아버지는 안면(安勉)이고 조부는 안원형(安元衡)”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승소가 지은 안복초의 묘갈과 고려열조등과록의 안노생 급제 기록에 나타난 안원형과 그 후대에

대한 기록은 대체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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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안씨의 시조

성씨의 역사

 

 탐진안씨(耽津安氏)의 시조는 안원린(安元璘)으로, 고려때 문과에 급제하고, 정당문학(政堂文學)

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내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으며, 이런 연유로 후손들이 탐진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원린이 과거에 급제하여 정당문학 등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사 등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 부분은 더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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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順興安氏)  
성씨의 역사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시대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 신호위상호군(神號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따라서 시조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그 후대로 순흥현(順興縣)에 세거했기 때문에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안자미의 아들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를 기준으로 1,2,3파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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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안씨(廣州安씨):

성씨의 역사


광주안씨(廣州安氏) 시조는 안방걸(安邦傑)이며 고려 태조 때 광주지방(廣州地方)의 관리로 뛰어났던 분이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였으므로 그 공적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오르고 광주군(廣州君)에 봉(封)해져 광주(廣州)를 본관(本貫)으로 하게 되었다.


성씨를 갖게 된 유래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초 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가 없었고 고려 태조가 후삼국 통일 후에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土姓分定정책을 시행하였으므로 이에 따라 안씨(安氏) 성(姓)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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